2023-07-16
예수님의 가치, 나의 가치 (마 26:14-25)
마 26:14-25(마 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마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 26: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마 26: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마 26: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마 26: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 26: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 26: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마 26:15)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마 26:16)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마 26:17)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마 26:18) 이르시되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이 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시니
(마 26:19) 제자들이 예수께서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준비하였더라
(마 26: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마 26: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 26: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 26: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마 26: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유다에게 있어 예수님의 가치는 은 삼십냥 이하였다. 그렇치 않았다면 그는 은 삼십냥에 주님을 팔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주님을 참 아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진정한 가치는 가격을 매길 수 없을 것이다. 주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천지의 주재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다. 만약 주님의 값을 매긴다면 무한한 가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다의 가치를 메긴다면 얼마나 될까? 주님에게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당신의 생명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기에 최소한 당신의 생명의 가치만큼 값진 사람이었다. 주님의 가치가 무한한 만큼 주님의 생명의 가치를 지닌 유다의 가치는 무한하다. 그것이 주님이 부여하신 유다의 가치이다. 반면 유다 자신이 평가한 자신의 가치는 은 삼십보다 훨씬 크지는 못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판단한 자신의 가치가 훨씬 값진 것이었다면 은삼십에 주님을 파는 그런 값싼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의 삶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사람이다. 유다는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의 가치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 끝까지 그런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삶의 평가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을 사람이다. 너무도 두려운 평가이다. 스스로 질문해 보자. 내게 주님은 은 삼십냥보다 가치 있는 존재인가? 유다의 케이스를 볼 때 단순히 스스로 속기 쉬운 생각이 아닌 나의 삶의 선택에서 주님이 은 삼십냥보다 가치 있는 분인 선택을 하며 살아왔는가? 오늘날 어떤 이들에게는 예수님은 아무 관심의 대상도 아니고 따라서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이다. 유다에겐 예수님이 적어도 은 삼십 정도의 가치는 있었지만 오늘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가치는 제로이다. 또 다른 이들에겐 생각으론 예수님을 하나님이라 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에 있어서 예수님의 가치는 전혀 달라서 한번도 자신의 선택이나 삶에서 주님의 가치를 지불한 적이 없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예수님 때문에 대가를 치른 적이 없다. 반면 어떤 이들에게 주님은 모든 것이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르며 심지어 나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고 중요한 분이다. 성경의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이런 삶을 살았다. 그리고 나의 선택에 따라 나의 삶의 가치도 결정된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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