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자
2024-11-10
나아만 II (왕하 5:8-14)
왕하 5:8-14
(왕하 5: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왕하 5: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왕하 5: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왕하 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왕하 5: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왕하 5: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왕하 5: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우리 안에도 나아만처럼 하나님 앞에 크고 존귀한 자 즉 주님이 깊이 사랑하시는 자와 동시에 이와 조화할 수 없는 나병환자 같은 요소가 있음을 발견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부조화를 인식하면서도 나아만처럼 적극적으로 이를 고치려고 하는 자세가 없다. 이런 나의 나병을 낫게 하시기를 진정 원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그래서 주님은 나아만 주위의 여러 사람과 자원들을 쓰신다.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어린 소녀 종을 쓰시고, 아내를 쓰시며, 아람 왕의 흔쾌한 허락과 지원, 그리고 이스라엘 왕에게 줄 물질적 풍성함까지도 허락하신다. 그런데 이런 주님의 도움도 만사형통만은 아니다. 이스라엘 왕의 인간적인 판단으로 길이 막힌 순간, 주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개입을 하신다. 선지자 엘리사가 먼저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낼 것을 요청한 것이다.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자이지만 동시에 가장 비천한 나병환자로서 엘리사에게 나아갈 때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간다. 그는 자신이 참으로 크고 존귀한 자임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자신의 비천한 모습을 말들과 병거로 덧씌우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그였기에 엘리사가 일곱 번 요단강에 씻으라고 하자 예상과 다른 처방에 화를 내며 떠나가려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크고 존귀한 자에 대한 대접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만일 그 안에 비루한 영적 나병환자가 없었다면 이 명령을 순종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이 또 한번 개입하신다. 이번엔 그의 종을 통해 개입하신다. 그의 종을 통해 나아만을 설득하셔서 그가 일곱번 요단강에 씻게 하신다.    

   나의 지난 삶을 생각해 볼 때 나 역시 나아만이다. 하나님의 심정을 전하며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너무나 “크고 존귀한 자”로 여김을 받았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내 안에 나병환자가 있기에 나아만이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에게 갔던 것과 같은 허세가 있었다. 이제 이런 나를 내려놓고 나아만처럼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그려 한다.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근다는 것은 무엇인가? 율법에 의하면 나병 같은 몹쓸 병에서 나은 사람은 정결하게 몸을 씻고 제사장에게 가서 나았다는 증명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요단강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나았다는 것을 증명 받기 위한 행위이다. 율법에선 한번만 씻어도 되는 반면 오늘 말씀엔 일곱 번이나 씻는다. 이는 일곱번이라도 이미 나았다고 믿고 씻으라는 것이다. 한번에 안될 수 있다. 주께서 나를 낫게 하실 것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오늘 나는 이 믿음의 결단을 한다.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