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여로보암의 길 다윗의 길 (왕상12:25-33; 마7:13-14)
왕상12:25-33; 마7:13-14(왕상 12:25)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왕상 12: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왕상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왕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왕상 12: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왕상 12: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왕상 12: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왕상 12: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왕상 12: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왕상 12:26) 그의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왕상 12: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왕상 12: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왕상 12: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왕상 12: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왕상 12:31)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왕상 12:32) 여덟째 달 곧 그 달 열다섯째 날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제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가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가 지은 산당의 제사장을 벧엘에서 세웠더라
(왕상 12:33)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마 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여로보암은 자신이 생각할 때 사는 길, 넓은 길 곧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을 택했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모든 후대 왕들, 심지어 상대적으로 나은 왕들도 여로보암의 길에서 떠나지 못했다고 기술한다. 그들도 모두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을 택했고 여로보암의 우상숭배가 이스라엘 왕들의 특징이었다. 사실 후대의 왕들은 자신이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백성들이 원하기 때문에 굳이 바꾸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왕만이 이 선택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둔 것을 이스라엘 왕들의 책임으로 묻는다. 이것이 리더 자리의 무거움이다. 유다 후대 왕들의 평가는 다윗이 기준이다. 특히 요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라고 기술한다. 여기서 우리는 여로보암의 길과 다윗의 길이 나뉘는 것을 보게 된다.
다윗의 길은 어떤 길인가? 다윗의 길은 좁은 길, 죽고 손해볼 수 있는 길이었다. 1. 골리앗과의 싸움 2. 사울에게 쫓길 때 사울을 두 번 죽일 수 있었지만 성령의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를 살려준 것 3. 압살롬의 반란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성을 떠난 것 4. 밧세바 사건 후 나단의 지적과 아이가 아플 때에 금식하고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함 등 모두 이 좁은 길을 선택했다. 그가 이 모든 것을 죽으려고 선택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자신을 주장하거나 자신의 이익, 혹은 사람들의 인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넓은 길이 아니라 죽고 손해볼 수도 있는 좁을 길을 택했다. 이것이 다윗의 길이며 이는 주님이 걸으신 십자가의 길이다. 살기 위해 눈에 보이는 넓은 길을 택하는 것이 아닌 죽기까지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다른 어떤 것도 우선 순위가 될 수 없다. 왕이란 지위도, 혹 죽을 위험 앞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선택에서도 주님만이 최우선인 삶, 그것이 다윗의 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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