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자
2024-05-12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막 9:38-50)
막 9:38-50
(막 9: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막 9: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막 9: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막 9: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막 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4) (없음)
(막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6) (없음)
(막 9: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막 9: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막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내가 생각하는 ‘우리’의 범위는 어디까지 인가? 우리에게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 우리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것을 추구하는 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종종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어진 하나의 말씀이라고 보지 않고 각 구절을 따로 해석한다. 그런데 나는 이 말씀이 이어진 하나의 말씀이라고 본다. 아니라면 50절이 “화목하라”로 끝날 이유가 없다. 요한은 제자로서의 헤게모니나 권리의 행사(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자들을 금한다. 제자들은 ‘우리’를 자신들(예수님과 제자들)을 따르는 자로 규정한 것이다. 주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우리를 따르는 자가 아닌 우리를 위하는 자로 ‘우리’를 정의하고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 하신다.   

   인간은 특권이 관여되면 배타적인 ‘우리’를 추구한다. 그런데 주님은 열린 ‘우리’를 지향하셨다. 그러면서 공동체의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는 것이 나의 어떤 부분이라면 그것을 찍어버리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우리’의 범주를 작게 한다. 반면 당연히 우리 안에 속한 나 자신에 대한 잣대는 한없이 관대하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범주를 극대화하고 그 안의 한 영혼에 대해서는 극도의 관심을 기울이시지만 나에 대한 잣대는 매우 엄격하다. 우리는 나를 따르지 않는 다른 사람을 쳐내서 나와 똑같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천국을 만들고자 하지만 주님은 나를 반대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내가 받아들이고 오히려 이를 거부하는 내 안의 일부를 쳐내므로 천국을 만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는 내 안에서 헤게모니, 나의 권리, 나를 따르는 사람들을 위해 다른 사람을 쳐내는 것과 자신에게는 관대하나 작은 자를 시험에 들게 해서 스스로를 지옥에 떨어지게 하는 나를 소금으로 정결케 함으로써 서로 화목하라는 말씀이다.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