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자
2026-05-31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의 의미 II (출 3:6, 히 11:14-16, 요 17:3)
출 3:6
(출 3: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히 11:14)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히 11:15)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히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지난 주에 이어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란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자. 넷째, 영원한 소망을 바라보라고 하신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동일한 약속 즉 가나안 땅과 하늘의 별과 같은 자손의 약속을 받고 이를 바라보며 살았지만 실제 이것을 누리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것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구체적으로 믿고 살았다(아브라함의 묘지 구매, 이삭이 흉년에 그 땅에 머문 것, 야곱이 돌아온 것과 돌아올 약속을 믿은 것). 이들은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살았고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께선 왜 이들에게 자신들은 직접 누리지도 못할 약속을 주시며 그토록 강조하셨는가? 그것은 히브리서 11장에서 가르쳐주는 것처럼 우리도 본향을 꿈꾸고 사모하며 믿음의 길을 가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 땅이 전부가 아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가나안 땅을 소망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이 인도하실 영원한 땅이 있다. 또한 비록 지금 육신의 자녀, 영적 자녀가 몇 없을지라도 하늘의 별 같은 자손을 주실 것을 믿음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다섯째,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생, 참 앎이 본질이다. 이 앎이 이 땅에 태어난 생것의 내가 아닌 거듭나고 변화된 나를 만든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약속하신 축복(가나안 땅과 하늘의 별과 같은 백성)을 구체적으로 누리거나 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직 구체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수백 년 후에 이루어질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계획이 이루어지는 출애굽이나 가나안 정복에 쓰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요건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처럼 하나님을 아는 참된 앎에 기초한 온전한 믿음이었다.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이라 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다. 왜냐하면 모세나 다윗의 삶은 doing(행위, 업적)이 많아서 우리는 많은 doing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시는 이유는 이 모든 것의 근본이 doing이 아니라 참된 앎이고 이에 기초한 being(본질, 존재)의 변화가 그 증거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느 시대 어떤 환경에 놓였느냐 얼마나 많은 일을 이루었는지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 진정한 영생, 즉 하나님을 앎이 있느냐 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