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자
2023-12-31
믿음의 의 II (욥 27:1-6; 40:1-5)
욥 27:1-6; 40:1-5
(욥 27: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욥 27: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욥 27: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욥 27: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욥 27: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욥 27: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욥 40:1) 여호와께서 또 욥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욥 40:2)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
(욥 40:3)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 40:4) 보소서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욥 40:5) 내가 한 번 말하였사온즉 다시는 더 대답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욥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사실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스스로 죄나 잘못이 없다면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참으로 귀한 신앙이라 할 수 있다. 이 순전함을 가지고 욥은 친구들의 끊임없는 오해와 괴롭힘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즉 내가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사람을 이길 수 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세상을 이길 수 있다. 욥은 이 순전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기려 한다. 그러나 양심의 순전함은 하나님을 이기지 못한다. 비록 하나님도 욥의 양심의 순전함을 귀하게 보셨지만, 내 양심의 의는 하나님의 절대적 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음욕을 품기만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 하셨는데 욥의 판단으로는 율법적으로 간음하지 않았기에 양심의 자책이 없었지만 과연 그가 한번도 음욕을 품지 않았고 자신의 눈으로 실족하게 하는 일을 경험한 적이 없을까? 진정한 율법의 의미를 알았다면 욥은 자신이 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 의인이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율법의 말씀을 해석해서 기준을 정하는 것은 나의 양심이다. 그리고 그 양심은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고 시대나 문화의 영향을 받기에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로마서에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이 양심에 따라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양심의 담대함이 있는 사람은 사람을 이기고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다. 비록 이것이 완전한 의는 아니지만 우리는 양심을 따라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양심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심정만이 우리를 온전히 의롭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심정, 그 진심을 받아들이면 (믿으면) 우리는 온전히 의롭게 되는데, 이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의 근본을 가르쳐 준다. ‘노력이 먼저냐 은혜가 먼저냐’ 에서 오늘 로마서 3장이 말하는 것처럼 은혜가 먼저이다. 그리고 진정한 은혜는 이 은혜에 대한 참된 반응, 즉 노력이 뒤따라온다!
      

    "나는 비천하오니 무엇이라 주께 대답하리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