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자
2026-04-12
새 계명 I (요 13:34-35; 눅 10:25-28)
요 13:34-35; 눅 10:25-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눅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0: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눅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눅 10: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주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유언처럼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주신다.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새 계명일까? 구약에도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눅 10:27)”. 구약의 계명은 율법사의 질문처럼 그 기준이 나에 기초한다. 내가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내가 내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율법을 대표하는 십계명도 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다. 그런데 주님의 새 계명은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기에 그 기준이 주님의 사랑에 기초한다. 그래서 이 계명은 새 계명이다.    

   조금 더 깊이 묵상해보면 첫째, 주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아는 참 제자만이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 구약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잘 모르거나 어렴풋하게 알았다. 그래서 그 기준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분명히 안다. 그렇기에 새 계명이다. 둘째, 구약에서는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이 각각의 계명, 두개의 명령이었는데 주님의 새 계명에서는 이 둘이 하나가 된다. 그래서 새 계명이다. 셋째, 주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에게 이것은 실천 불가능한 사랑이다. 누가 스스로 주님처럼 사랑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주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기에 이것은 내 스스로 하는 사랑, 즉 구약의 계명처럼 나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순종할 때만 가능한 사랑이다. 그래서 새 계명이다. 넷째, 주님의 새 계명은 율법의 완성이요 더 높은 차원으로의 승화이다. 나의 최선은 사람마다 다르고 과연 그것이 최선이었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율법 즉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절대적 기준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님의 새 계명은 이 부족한 율법을 주님 사랑이란 절대적 기준으로 승화시키고 내가 아닌 성령을 좇을 때만 가능한 하나님의 사랑이 되게 한다. 그래서 새 계명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