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자
2018-02-12
느헤미야 XIII
느헤미야 3장 13-32절

3: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거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일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3: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3: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으며 문짝을 달며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
3:16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
3:17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
3:18 그 다음은 그 형제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
3:19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자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
3:20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3:21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
3:22 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고
3:23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3:24 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하되 아사랴의 집에서 부터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
3:25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
3:26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하여 동편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어민 망대까지 미쳤느니라)
3:27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어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
3:28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3:29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
3:30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3:31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고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누에 이르렀고
3:32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고들이 중수하였느니라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 성벽 건설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이 지루하리만큼 계속 나온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업적을 기술하거나 자랑하는데 치우치지 않고 너무도 담담하고도 정확하게 예루살렘 성벽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열거하며 그들이 한 일을 정확히 기술한다. 느헤미야에게, 아니 하나님께는 이 이름들이 결코 한사람도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이름이리라! 다윗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의 겉모습은 이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다웠을 지 모르지만 어쩌면 주님은 이 성벽을 더 사랑하시지 않으셨을까? 그러기에 주님은 이들의 이름과 한 일을 이렇게 하나하나 열거하며 당신의 책에 기록하신 것이 아닐까?
   놀라운 것은 넓은 지역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한 일이나 개인적으로 자신의 집과 마주한 부분을 건축한 이들이나 성경에 차지하는 분량이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 주께서 주신 달란트의 비유처럼 많은 달란트를 받고 많은 일을 한 사람이나 작은 달란트를 받았지만 그에 합당한 일을 한 사람이나 성경은 같은 비중으로 다루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로 공평하시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앞에도 진정한 선택이 있다. 나는 “많은 것을 가지지 못하였기에 할 수 없습니다” 라고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비록 작은 자이지만 세상이 칭송하는 업적이나 명예가 아닌 하나님 나라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추구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가 한 일을 자랑하기 보다는, 비록 가장 작은 일이라도 진심으로 하나님 나라에 벽돌 하나를 쌓아 올리는 형제 자매의 헌신을 자랑하고 있는가?

      “이르렀고 ….. 중수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