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심정을 깨달은 자
2020-03-16
Epistle of Joy XXXV
빌립보서 4장 1-3절
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4: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바울은 앞 구절에서 말한 것처럼 주 안에서 바로 서기를 권면하며 특별히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한다. 아마도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다른 생각을 품고 교회의 리더십과 문제를 일으켰거나 혹은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있지 않았나 싶다. 바울의 권면은 짧지만 구체적이고 힘이 있다. 같은 마음을 품는 비결은 “주 안에서” 이다. 우리는 종종 많은 다른 의견과 다툼을 본다. 한국 사회, 그리고 때로는 교회가 해결하지 못하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같은 마음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주님의 마음을 내 안에 채워서 내가 “품는” 것이다. 여기에는 의지와 결단이 있다. 그리고 먼저 주님의 마음을 배우고 품어야 한다.

    두번째로 바울은 빌립보서 편지를 받는 사람에게 구한다.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위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이 사람을 자신과 멍에를 같이 한 자라고 부른다. 참으로 놀라운 관계이다! 우리는 가끔 나를 돕는 자들을 만난다. 그러나 내게 멍에를 같이 한 자가 부부 외에 과연 있을까? 부부는 어쩔 수 없이 멍에를 같이 맨다. 멍에를 같이 맨다는 것은 선택적인 것에만 같이 한다는 뜻이 아니다. 멍에를 같이 했기 때문에 원치 않아도 같이 해야 한다. 그런데 본문의 수신인은 분명히 바울의 아내가 아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수신인을 멍에를 같이 한 자라고 부른다. 즉 두 사람의 관계는 일반적인 이해 관계와 판단의 기준을 넘어 참 신뢰로 항상 같이 가는 관계라는 것이다. 무엇이 이것을 가능케 하였는가? 바로 주님이시다. 서로 그리스도가 참 목표가 되면 이런 막역한 신뢰를 줄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의 상급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있는 것이다.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